YOUNGJOO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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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그로 스왑Aggro - Swap》작업노트
《어그로 스왑》은 전영주가 직접 기획, 참여한 이인전입니다. 서로가 어그로 끌린 장면을 교환, 공유하고 같은 장면에서 느끼는 감상을 회화로 도출한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습니다. 유숙형과 전영주는 일상적인 사진을 기반으로 각각 작가가 느끼는 감상을 추출해 작업해왔습니다. 이 전시는 비슷한 방법론을 가진 두 작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전환하고 있는 시기이며 마지막으로 두 작가의 작업이 수렴하는 지점에 기획되었습니다. 어그로 스왑은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회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똑같은 이미지를 각 작가의 시선으로 분화하는 기획을 통해 두 작가의 명확한 차이점을 관객에게 학습시킵니다. 흐르고 번지는 듯한 표현 방식과 쌓아내고 탄탄하게 올려가는 터치, 특유의 조색 방식은 같은 이미지도 다른 화면이 되어 감상자에게 각각 다른 감상을 주고, 끊임없이 캡션을 번갈아 보며 각 작가가 가진 차별점을 찾아내도록 합니다.
아울러 감상자는 동선에 변화를 줄 수 있도록 구성한 설치를 통해 전시를 다각도로 보게 됩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와서 좌측에 같은 도상을 그린 그림을 붙여 설치해서 이 전시의 기획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같은 도상을 보고 그린 그림을 직접적으로 붙여 설치하지 않고 떨어뜨려 놓았는데, 전시장의 기둥, 벽을 이용해 특정 자리에 서면 쌍을 이룬 그림이 같이 보이도록 구성했습니다. 감상자가 전시장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특정 씬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 했고, 이런 설치 방식이 전시를 다각도로 오래 감상 할 수 있는 장치가 되길 바랐습니다. 또 도상의 시선 방향에 그림을 걸어 리듬감을 만들거나, 오리 배 도상의 그림 밑에 백조의 발 도상을 두는 유머를 보여주는 등 다양한 의도가 섞여 있어 전시장이 마치 애너그램처럼 기능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감상자가 지속적으로 어그로에 끌리며 전시장을 오래 배회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어그로스왑》에서 숙형과 함께 그릴 이미지를 교환하고 동일한 도상을 그렸습니다. 나는 숙형과 내가 찍고 고른 사진에서 사건이나 장면의 불가항력을 추출했습니다. 이 통제 불가능한 감상을 드러내는 방식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며 추가, 통합됐습니다.
1) 도상을 보고 화면을 구상하는 단계
2) 그리는 중간에 마주치게 된 우연한 기법에서 그림의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
3) 완성 후 마주한 감상으로 제목을 정하는 단계

이렇게 세 단계를 거쳐 고정된 계획보다는 흐르는 과정으로 작품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을 통해 각각 원본이 되는 사진에 숨어있는 불가항력을 유연한 방식으로 끌어내려 합니다. 각 작품의 작업 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Ice〉- 감당할 수 없는 불운과 감당할 수 없는 행운은 결국 본질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주사위가 던져졌을 때 얼어붙는 단 한 순간을 떠올리며 그렸습니다. 그리는 과정 중에 보였던 스트로크가 얼음이 녹아내리며 미끄러진 흔적처럼 보였던 것에서 제목을 착안했습니다.
〈Phobia〉- 공포는 익숙한 곳에 끼워져 있을 때 더 불쾌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장면조차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Romance〉- 로맨스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풍물시장에서 발견한 비너스와 캄보디아에서 본 마네킹 사진을 두고 단번에 로맨스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처럼, 맥락 없이 느껴지지만 분명히 어떤 휴리스틱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Wild〉-  흰자가 보이지 않는 새의 동공을 응시해 봅니다. 관상 이외의 특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격성, 야생성, 예측 불가능함, 자석과 나침반, 유전자 깊이 새겨진 알 수 없는 무언가.
〈Cross〉- 룸피니 공원에서 본 오리배 두 대가 겹쳐 지나갑니다. 어그로 스왑 전시를 기획하며 그린 첫 그림입니다. 비슷한 방법론으로 그림을 그리는 두 작가가 한 전시에서 마주치고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는 지금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어떤 미래로 갈까요?

캔버스를 눕혀 그리면, 정면으로 세워 두고 그릴 때와 다르게 그림의 표면을 보고 그리게 됩니다. 이때 도상의 형태는 수평 방향으로 일그러져 보이지만 표면에 물감이 올라가는 양, 반짝이는 정도와 요철은 더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과정이 조각하는 자세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묽은 농도의 물감은 통제할 수 없게 번지고 흐릅니다. 조각하듯이 우연적 효과를 조절해 그립니다. 그럼에도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한 기법은 내가 생각해 본 적 없는 방향으로 그림을 끌어갑니다. 그림 옆면에 이스터에그가 있습니다. 캔버스의 모서리를 타고 흘러내린 물감 사이를 묘사하듯 채웁니다. 마치 어쩔 수 없는 사건에 대응해 가듯 불가항력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욱여 넣습니다.






YOUNGJOO JEON 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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