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JOO JEON

Statement





  • 《유빙Driftice 퍼포먼스 스크립트
관객 입장
래인 - 깃발 들고 관객 입장도운 후 깃발을 영주에게 토스
전시장 초입
영주 -도로보키츠네 투어에 와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 투어는 제가 홋카이도로 리서치트립을 다녀온 후 느낀 감상과 여정을 따라가며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요. 투어 이름이 도로보 키츠네 투어인 이유가 궁금하실 것 같아 잠깐 소개해보겠습니다.
일본어로 도로보는 도둑 키츠네는 여우라는 뜻입니다. 제가 홋카이도 여행에서 이인조 여우도둑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한 마리가 앞에서 애교를 피우며 정신을 빼놓는 사이,  사진을 찍느라 잠시 내려둔 삶은 달걀꾸러미를 또 다른 한마리가 훔쳤던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큰 영감을 받아 아! 모든 일은 분업을 해야하는 구나! 하고 이 투어도 그 분업 방식에 착안해 꾸려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 도로보 키츠네 투어는 가이드를 맡게된 전영주와 운전기사를 담당하는 이래인이 함께합니다! 반갑습니다!(박수 갈채)
저희 도로보 키츠네 투어의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확률 게임입니다. 홋카이도는 관광산업이 많이 발달한 지역인데요. 아이러니한 지점은 관광이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파트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확실성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범하게는 관광을 하다 눈이 많이내려 조난당할 수 있다는 점부터, 예기치 못한 야생동물을 만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는것을 이용해 관광 마케팅을 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오늘 메인 프로그램인 유빙 투어도 유빙이 떠내려올지, 떠내려오지 않을지까지도 확률에 달려있는데요.
저는 이렇게 여행이든 작업이든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예기치못한 불확실성, 불가항력을 잘 다뤄내고 통제하는것을 즐기고 좋아합니다. 해서 오늘 투어도 이 확률 게임에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래인 -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고 끄덕 끄덕.
투어 관계자 일동 술렁, 영주에게 귓속말.
영주 - 아 방금 유빙 관광 쇄빙선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유빙이 오호츠크해 근해까지 떠내려 오지 않아서, 진짜 유빙 관측을 어렵다고 하네요. 대신 쇄빙선을 타고 오호츠크해 주변에 언 얼음을 부수며 산책하도록 하겠습니다.
래인 -  제일 큰 유빙 덩어리를 끌고 원래 자리로 이동
영주 - 자 여러분 지금 들리는 소리가 바로 쇄빙선이 얼음을 부수고 가는 소리입니다. 운이 좋다면  얼음 위에 조난 당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데요, 마침 잠자는 백조 한마리가 얼음위에 있네요..!우리도 진짜 유빙은 아니지만, 유사 유빙(?)을 조금 더 가까이서 관측하러 가볼까요?
페인팅 작업 앞
영주 - 저희가 처음 여행하게될 지역은 아바시리입니다.마침 저기 아바시리를 지역을 닮은 유빙이 지나가네요!
래인 - 두번째로 큰 조각을 끌고 원래 자리로 이동후 영주 옆으로  
영주 - 왠지 유빙하면 북극에서부터 떠내려오는 빙하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빙하도 한 순간에 녹아버릴 수 있는 얼음이긴 하지만 왠지 만년설이 암석처럼 퇴적되어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얼음이라 그런지 느껴지는 무게가 다릅니다. 그런데 아바시리의 유빙은 사실 오호츠크해 연안에 아무르강에서 얼어붙은 얼음 조각이 떠내려 오는것일 뿐인데요. 그럼에도 유빙 관측에서 ’진짜 유빙‘으로 여겨지는 얼음과 ‘가짜 유빙’으로 여겨지는 얼음이 있습니다. 강에서부터 떠내려와 얼음덩이에 살이붙으며 만들어진 유빙은 진짜 유빙입니다.바람의 방향이나 날씨에 의해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는 특별한 유빙인데요. 유빙투어에서 유빙관측을 성공했다고 한다면 바로 이 유빙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오늘처럼 유빙선 측에서 오늘은 유빙이 떠내려 오지않아 아바시리 근처바다를 산책 하며 보게되는 얼음이 있는데 이게 바로 제가 말하는 가짜 유빙입니다. 사실 제가 아바시리에서 본 유빙도 이 가짜 유사 유빙인데요.  어떤 순간이든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두는 순간 특별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유빙이 더 인상깊었습니다.  
작품 윈드 윈도우 앞
영주 - 저는 늘 우연을 가장한 필연같은 여행을 좋아해서 확률을 생각하며 여행계획을 짜곤 합니다. 유빙관광도 원하는 장면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차와 배로 두차례 진행했는데요. 돌이켜 보면 기획된 깜짝선물같은 순간에 스스로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저희가 탄 기차도 유빙을 관측할 수 있는 해안가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유빙선에서는 대체 코스로 가짜 유빙을 봤지만 유빙 열차에서는 진짜 유빙을 봤는데요. 푸른 바다 위에 구름처럼 떠있는 유빙의 모습은 말간 하늘과 대비되어서 꼭 신기루 같았습니다. (가끔 유빙이 하늘 위에 떠있는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는데, 그건 정말 신기루라고 한다네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기차에서 본 유빙은 생각보다 많이 기억에 남거나 가까이 와닿는 느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와서 왜 그런지 고민해보았는데, 물리적으로는 유빙을 보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 그리고 또 완전한 유빙이었다는것이 그 이유였던것 같습니다. 마치 깔끔하게 이별한 연애보다 흐지부지 끝난 연애가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처럼. 오히려 바다 표면이 얼어붙은 가짜 유빙보다 진짜 유빙이 저에게 신기루같은 감각으로 남아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잠시 여기 차창밖을 봐주시겠어요? 이 앞의 풍경은 기차 차창 너머로 본 홋카이도의 풍경인데요, 하늘 쪽에 신기루처럼 떠있는 형상이 사실은 반대편 차창이 비친 그림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 형상을 바로 알아 맞추지 못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너무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추상이 아닌 구상을 하면서 누군가가 이미지를 바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 흠이 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그 부분이 이 장면을 보는 시간이 확장시켜주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이장면의 시간은 한순간이었지만 어떤 도상을 바로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감상하는 시간의 딜레이를 걸어주며 이 장면에 대해 생각할 틈을 만드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감상자와 마찰하고 불화하는 과정을 통해 만드는 깊이랄까요.
이 풍경을 마주하며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마찬가지로 우연적이여보이는 기법으로 표현해 내는 과정도 저는 정말 좋아했습니다.
작품 굿시 돌아보는 동선
영주 - 유빙 관측 외에도 저는 홀짝처럼 확률에 기대 여행했는데요. 야생여우를 만나기 위해 여우가 자주 출몰하는 호숫가 도로를 7km정도 걸으며 걷거나, 야생 백조가 출몰하여 온천욕을 하는 조용한 마을을 찾아가기도 하며 불확실한 마주침에 대한 확률을 높였습니다. 이렇게 최대한 확률을 다루면서 여행해도 실제 상황과 마주하면 느끼는 감상은 또 다른것 같아요.여기 이 굿시 시리즈가 그런데요. 사실 저는 이 굿샤로 호수에서 보는 백조를 실제로 만나기 전엔 원하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아하고 아름답고 그런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굉장히 크고 목도 더 기괴하게 움직이고 더 역동적이었습니다. 순간 제가 예기치못한 것을 다루면서도 그 대상이 이럴것이다 판단했던것을 알아버렸어요. 그리고 여기서 느낀 대상화되지 않은 이미지를 옮겨보려 했습니다. 큰 사건은 아니지만 대상화 된 이미지와 불화하는 과정도 작업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이쯤에서 이 작품의 제목인 굿시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요.
여기 이 굿샤로 호수는 ~~리 정도의 작은 마을이라 칼데라 호, 화산 등의 자연관광지를 제외하면 다른 컨텐츠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차원으로 네스호의 네시처럼 굿샤로 호에는 굿시가 있다!며 마스코트로 내세웠는데요. 실제로 그런 수장룡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백조의 기괴한 목과 생태가 확실히 공룡의 후손이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 제목을 굿시로 정했답니다.그럼 저를 따라 걸어서 굿시의 생태를 돌아봅시다.
다시 전시장 초입
다시 돌아와 저는 이런 여행 과정에서 생기는 불확실성이 도박처럼 재밌기도 하고  신의 배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뚫고 원하는 장면을 만날때마다 같이간 래인씨와 함께 ‘아바시리의 카미사마는 우릴 좋아하나봐.‘, ‘데시카가 초의 카미사마 감사합니다.’ 등의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다시 이쪽을 보시면 여기도 유빙조각이 떠내려와 있네요.이 유빙은 조각이지만 회화보다도 얇은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본 유사유빙같기도 하네요.저는 회화작업을 주로 하며 회화가 가진 물리적 몸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회화가 평면임에도 입체적인 요소인 질감이나 두께가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되는게 흥미로웠거든요. 순간의 붓질이 가진 아우라는 복제해 낼 수 없지만 그 몸은 복제할 수 있겠다 생각해서 그림을 그린 뒤 그것을 실리콘으로 떠내 캐스팅 했습니다.
한순간 생겼다 사라지는 물결의 모양이 얼어붙어 박제된 유빙처럼, 한 순간의 붓질을 복제해서 다뤄내 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작품은 저기 기프트샵에서 똑같은 과정으로 제작된 굿즈로 소장할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래인 - 마지막 조각을 원래대로 맞춘후 영주 옆으로 이동
영주 -저희가 투어를 마무리할 때쯤 되니까 떠돌아다니는 유빙들도 제자리를 찾았네요!유빙 위에는 저희의 여정이 담긴 가챠 벳지들이 놓여져 있어요. 저는 이 투어의 기반이 된 리서치 트립을  2024년 2월에 갔다왔습니다. 저희가 가는 역이나 상점마다 가챠뽑기가 있었는데요. 이 벳지들은 모두 그 여행에서 뽑은 가챠들입니다. 물론 이 가챠도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어떤 벳지는 거의 5번 정도의 시도 끝에 뽑아냈습니다. 누군가는 아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미술도 다르지는 않은것 같기도 합니다. 가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중요하다 생각하면 생기는것이니까요.저는 작가가 일방적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을 만드는 여정을 통해 저는 조금 더 제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작품도 저를 만들어 준 것이죠. 그래서 이 여정이 저에게 중요한 가치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불가항력을 유연하게 대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었던 홋카이도가 저에게 남긴 선물 같습니다.  
래인 - 옆에서 감동의 눈물을 훔친다.
마무리 멘트 및 기념사진 촬영
마지막으로, 이 유빙 작업을 하며 적은 작업 노트 중 한 구절로 투어를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아무도 빙하라고 속인 적 없고 누구도 떠내려올 것이라 장담하지 않은 얼음덩어리를 내가 믿는 낭만으로서 지금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은 영원히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을 재현하려는 태도와 비슷할 것이다. 유빙 회화-조각 시리즈는 소수점 아래로 영원히 펼쳐지는 9처럼 닮거나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이다.이상 여러분의 투어를 마칩니다. 도로보 키츠네 투어의 가이드 전영주!
래인 - 유빙 운전기사 이래인 이었습니다!
래인 - 지금부터 유빙 관광의 하이라이트 기념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원하는 곳에서 유빙과 함께 사진 촬영해 드리겠습니다!



YOUNGJOO JEON 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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