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JOO JEON

Statement





  • Note.
파도를 붙잡는 방법
파도는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양으로 치지 않습니다. 파도가 치고 나면 그 장면은 사진으로 남거나 낱장의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과거는 평면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친 파도는 다시는 만질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만질 수 있는 것만 입자와 덩어리를 가지기에 저는 현재를 입체로 느낍니다. 제가 어떤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그것을 입체로 구현하는 이유는 거슬리던 풍경과 그것을 그리던 순간을 현재로 불러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의 붓질은 파도와 비슷합니다. 마음에 드는 스트로크가 나와도 그것을 완벽하게 똑같이 반복할 수 없습니다. 붓으로 일으킨 파도는 늘 아쉬움이나 그리움을 남깁니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이미 그려버린 붓질의 입체감을 복제하여 과거의 질감을 회상해 봅니다. 나와 마찰하던 장면을 그리고 그것을 그리던 붓질을 조각으로 재현 합니다.

마찰하는 그림
그림을 그릴 때 이미지가 작가와 마찰하는 지점인 ‘요철’, 즉 도상이나 상황의 이질감을 매끄러운 표현 방식으로 메우려 합니다. 나는 번지거나 스며드는 물성, 빠른 스트로크 등 우연적 기법을 최대한 통제하여 사용합니다. 이를 통해 화면을 회화적인 듯 하지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매끄럽고 인공적이게 느껴지도록 의도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감상자와 다시 한번 마찰합니다.

회화의 몸
평면은 정면에서 보기를 전제로 그립니다. 그렇기에 감상자가 그림의 옆면을 보려 하는 것은 회화를 평면만으로 보기를 사양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거절이기보단, 그림에 대한 관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림을 입체적으로(물리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감상하고 싶을 때 그림의 옆면이나 질감을 확인합니다. 물감이 퇴적된 흔적이나 그것의 두께를 보고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연상합니다. 혹은 캔버스 옆면 처리를 보고 작가의 회화에 대한 태도를 예상해봅니다. 정면에서 볼 때 회화는 회화로서 감상할 수 있지만, 측면에서 볼 때는 작가의 태도나 그리는 과정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회화의 몸’ 즉, 입체적 요소는 다정한 감상자를 위한 선물 같은 레이어이며 그것을 조각화해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합니다.





YOUNGJOO JEON 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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